▲ 한 휠체어 이용자가 저상버스에 오르고 있다.

 

▲ 한 휠체어 이용자가 저상버스에 오르고 있다.

“저상버스(교통약자를 위해 제작된 계단 없는 버스)는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등 교통약자를 위해서 도입됐습니다. 특히 저상버스는 일반 시내버스에 비해 유지비가 턱없이 비쌉니다. 그런데 지자체나 정부에서 이런 저상버스의 유지비를 보장하지 않으면 버스 운송업체는 지금처럼 저상버스를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위해 투쟁해 온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상임대표는 지난 23일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우리나라의 저상버스 현실을 꼬집었다.

이 상임대표는 저상버스의 보급이 정착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비싼 저상버스 유지비를 들었다.

지난해 한국운수산업연구원이 발행한 ‘저상버스 도입 확대에 따른 지원방안 연구’를 보면 저상버스에 들어가는 부품이 경유버스에 비해 4배~13배까지 비싼 것을 알 수 있다.

  ▲ 경유버스 및 CNG 버스의 주요 부품별 가격 비교.  
▲ 경유버스 및 CNG 버스의 주요 부품별 가격 비교.

이런 상황이다 보니 버스 운송업체가 저상버스 유지관리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저상버스 보급 확대를 기피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장애계와 한국운수산업연구원은 밝혔다.

지난해 3월 공포·시행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 제14조 2항에 따라 버스 운송업체는 저상버스 1대를 도입할 경우 국가 50%, 지자체 50%의 지원을 받아 저상버스를 운용한다.(서울특별시는 국가 40%, 서울 60% 부담)

이러한 이유로 현재 각 시·도별 전체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보유 현황을 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서울 28%, 경기 9.9%, 전북 7% 등 지역별 격차가 크다.

  ▲ 전국 버스 운영현황.  
▲ 전국 버스 운영현황.

한편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정책학과 우희순 씨가 지난 2005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영국 런던시의 경우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노선이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선에 대해 버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정부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고 런던시도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

런던은 2005년도에 이미 전체 버스 중 저상버스의 보급률이 70% 수준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버스 이용횟수가 잦은 지역이나 번잡한 곳을 위해 25인~34인승 규모의 미디 버스(midi bus, 소형 버스)를 도입하고 1,000대 이상 운영하는 등 교통약자를 포함한 시민의 이동권과 접근성을 확대하는 추세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경우 2005년 당시 저상버스를 60% 이상 보급한 상황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접근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을 위해 리프트 장착 미니밴을 제공한다.

  ▲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상임대표.  
▲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상임대표.

이 상임대표는 “경상남도의 경우 장애인 밀집지역에는 저상버스를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리프트가 작동되지 않으면 해당 버스를 운영하지 않는 등 교통약자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단순히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의 운영과 저상버스 유지비를 정부나 지자체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상임대표는 “김포에서 일반 시내버스를 4~5대 이상 보내고 도착한 저상버스를 타려 했지만 그냥 지나치거나 버스를 타러 가는 사이 버스가 출발해 3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며 “버스가 배차간격에 쫓겨 운행하지 말고 교통약자의 안전과 이동권을 위해 저상버스 보급 활성화 및 안전사고를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안전상의 문제에 대해 “저상버스에서 리프트(휠체어, 유모차 등이 내려올 수 있도록 제작된 구조물)가 작동하지 않아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며 “실제로 리프트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하차시 휠체어가 전복돼 한 장애인이 크게 다친 사고도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등은 지자체 차원에서 매년 버스 운송업체를 방문해 저상버스 운영 실태를 조사·평가하고 저상버스 리프트 작동방법과 친절 및 안전교육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버스가 승강장 보도 턱과 거리가 먼 상태에서 정차해 리프트가 보도 턱에 닿지 않는다거나 승강장의 보도와 저상버스 리프트 간 경사가 커서 안정상의 문제가 제기되는 등 올바른 리프트 운용과 교통약자의 안전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교통약자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개선 필요해

최근 평택에서는 휠체어를 탄 정지숙 씨가 저상버스에서 하차하던 중 휠체어가 전복돼 머리와 얼굴을 땅에 부딪치는 사고가 있었다.

  ▲ 최근 저상버스에서 하차하는 도중 휠체어가 전복돼 지면에 얼굴을 부딪친 정지숙 씨가 병원에 입원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출처 : 김음강씨  
▲ 최근 저상버스에서 하차하는 도중 휠체어가 전복돼 지면에 얼굴을 부딪친 정지숙 씨가 병원에 입원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출처 : 김음강씨

당시 해당 저상버스는 리프트가 작동하지 않아 정 씨 홀로 앞문으로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사고 직후 정 씨는 눈 주위가 붓고 어지러움 증상이 이어졌지만, 버스운전기사는 별다른 조치 없이 ‘병원에 가봐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의 경우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저상버스에 오르내릴 때, 버스운전기사가 직접 교통약자를 돕는다.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경호 공동대표는 “이 문제가 단순히 장애인의 이동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임산부, 노약자 등 모든 교통약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경호 공동대표는 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경우 저상버스를 타고 내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다른 비장애인 승객들이 버스기사에게 빨리 가자고 독촉하곤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몸도 불편한 사람이 왜 다니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무엇보다 교통약자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하는 공공성 있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