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장애인을 ‘위한’ 전(全) 사회의 시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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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와 서울시도 ‘감시’ 기반한 보호정책 펼쳐2014.02.20 22:15 입력
![]() ▲지난 17일 충청남도는 지적장애여성의 성폭력 범죄 예방을 위해 가정 내에 CCTV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
# 지적장애여성 성범죄 예방을 위한 CCTV, 전국 확산
당신 집 입구에 CCTV(폐회로텔레비전)가 설치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 집을 찾아온 사람들의 들고 남은 CCTV에 고스란히 담긴다. 이것은 당신이 ‘원해서’이다. 혹은 당신의 바람과 상관없이 당신의 ‘보호자’가 원해서일 수도 있다. 이를 설치한 지자체와 경찰청은 당신이 원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은 지적장애여성이다. 이 카메라는 ‘성범죄’ 예방을 위해 설치됐다. 당신이 이를 ‘원한다/원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목소리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당신은 당신이 처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설령 CCTV를 원하지 않더라도 ‘원하지 않는다’라고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울 수 있다.
CCTV가 필요한 장애여성의 욕구는 안전함일 것이다. 그러면 그 안전함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축되는가. 장애여성의 안전함을 위해 CCTV를 설치한다는 방안은 성범죄 문제 해결의 주어를 누구로 상정한 것인가.
성범죄 예방을 위해 지적장애여성 가구에 CCTV를 설치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지난해 4월 전남 장흥을 시작으로 5월 충북 진천, 올해 1월 군산, 2월 충남이 이 사업을 발표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4대 사회악(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척결에 기반을 둔다.
지적장애여성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가 CCTV 설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CCTV를 설치했을 때 ‘누구를 최우선으로’ 두고 택한 방법인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지적장애여성은 범죄에 취약하다. 맞는 이야기다. 사회적 약자이기에 배려해야 한다. 이 또한 옳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선한 배려’와 장애인을 ‘보호대상’으로 규정해 분리 정책을 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 위험한 사회는 감시 사회를 만들었다
해당 지역 경찰서는 CCTV 설치 시 본인 동의를 거쳤으며, 원하는 경우만 설치하고 원하지 않으면 설치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또한 CCTV는 출입구, 마당 안쪽 등을 향하고 녹화저장장치는 당사자 집에 보관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범죄 예방을 위해 범죄에 취약한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는 방식이다. 이들은 왜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지 사회는 묻지 않는다. 가해요소에 대한 정책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영화 ‘도가니’ 이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언론 보도가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정부 정책의 변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으로 성범죄 신고율이 높아짐에 따라 언론 노출의 비율도 높아진 것으로 배 대표는 분석한다.
하지만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사건 보도가 증가하자, ‘마치’ 장애여성이 살아가기에 더욱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가 된 것 같다.
이러한 ‘위험한 사회’ 속에서 보호를 위해 즉각적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감시와 통제다. 그중 대표적인 방법이 CCTV 설치, 위치추적, 지문 및 DNA 수집 등이다. 사회적 돌봄을 이유로 하기에 당사자 이해를 구하기도 쉽다.
그렇다면 과연 CCTV 설치로 성범죄 발생률이 줄어들었는가. 정보인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활동가는 “CCTV는 성범죄 예방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예방에 기여했다는 통계도 없다”라면서 “이는 단지 사고 후 증거 수집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최근 CCTV를 설치한 충남도청의 담당 사무관은 “그것은 견해 차이”라면서 “CCTV 설치 경고문이 붙어 있으니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범죄 심리가 억제되지 않겠느냐”라고 밝혔다.
![]() ▲지난 2012년 활동보조가 없는 사이 자택 화재로 숨진 고 김주영 활동가의 집. |
# 약한 자들을 위한 보호, 전(全) 사회의 시설화
그런데 이러한 ‘견해 차이’가 정책을 만들고 장애인의 사회적 몸-자리를 정한다.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시설을 만들었다. 시설이 작동하는 방식은 ‘보호, 감시, 통제’이다. 당사자의 자율권을 없앤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설은 단지 물리적 공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시설이 문제인 것은 그 안에 그러한 작동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호, 감시, 통제의 작동 방식은 이번 사업 방식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지적장애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자택에서 화재로 사망한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 이후 복지부는 ‘응급안전서비스’를 대책으로 내놓았다.
중증장애인 가구에 화재·가스누출·활동감지센서, 가스차단장치, 게이트웨이(통신장치)를 기본적으로 설치하고, 일상생활을 전혀 수행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특성을 고려해 맥박센서와 CCTV를 설치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서울시는 지난 3일 장애인, 노인 등 의료취약계층을 위해 이번 달에 의료안심주택 착공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의료안심주택이란 현관이나 화장실을 일정 시간 이용하지 않으면 센서가 자동 감지해 관리사무소로 연락하고, 환자의 건강 이상 여부를 체크해 응급상황 시 신속하게 의료구조를 받을 수 있는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주택이다. 병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립병원, 보건소, 국공립 의료기관 반경 500m 이내에 짓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내년 상반기 공사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흐름에 대해 배복주 대표는 “사회적 약자를 계속 보호, 통제, 감시하는 방향으로 기능이 작동되면 이 사회는 거대한 시설처럼 될 것”이라며 “통제와 감시가 아닌 개인이 힘을 가지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를 끼치는 위험 요소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라고 지적한다.
배 대표는 “일시적으로 보호조치를 할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바꾸고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라면서 “후자가 선행되지 않고서 보호정책만 강화한다면 약자는 지역사회에서 안전한 곳만 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어딜 가나 안전해야 하는데 ‘그 공간’에서만 안전하게 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 변화 없이 통제 가능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전(全) 사회의 ‘시설화’는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장여경 활동가는 “감시시스템은 사회적 돌봄을 명분으로 한다”라며 “그러나 감시로 사회안전망이 생기진 않는다. 감시가 아닌 연대와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의료안심주택에 대해서도 장 활동가는 “(화장실 사용 시간 등은) 비장애인이라면 수치심을 느낄 정보 아닌가. 사회 돌봄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존엄성, 자율권을 포기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으며 “CCTV 등 ‘감시 기계’를 만들어내는 회사는 시장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이제 근본적인 고민과 함께 뚜렷한 입장을 세워야한다.”라고 강조했다.
#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장애인계는 십여 년간의 투쟁을 통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탈시설-자립생활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시설이 물리적 공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면 탈시설 역시 시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을 하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지난해 탈시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집을 펴냈다. 제목은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사람들은 장애인을 ‘위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시설을 만들었다.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에게 사람들은 또다시 당신을 ‘위한’ 거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위험하다. 장애인을 ‘위하기에’ 장애인은 또다시 주체가 아닌 대상일 뿐이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정책은 마치 공간을 옮긴 장애인의 몸을 따라 감시와 통제라는 시설의 시스템 또한 옮긴 듯하다. 그렇게 장애인의 몸은 여전히 감시받고 통제받는다. 비장애인은 이를 당연하게 바라본다. 시설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구축된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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