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 '아이고,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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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 '아이고, 의미 없다~' ②


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 자립에 필요한 서비스, 예산 확대가 핵심2015.07.08 18:33 입력
이 글은 지난 6월 30일에 있었던 ‘장애인 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한가?’토론회에 제출된 토론문을 바탕으로 새롭게 작성한 것입니다. 지난 6일 게재한 1편에 이어 2편을 싣습니다. 앞으로도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는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논의해봐야 할 중요한 의제가 있을 경우 종종 ‘번외 편’을 운영토록 하겠습니다.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 '아이고, 의미 없다~' ①」먼저 읽기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는 별개의 문제
영국의 경우 현금지급제도에 뒤이어 개인예산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흔히 이 두 제도는 필수불가결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인식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개인예산제도는 기술적인 면에서 현금지급제도와 완전히 별개”1)의 문제이며, “서비스현금지급제는 개인예산을 받는 하나의 방법”2)에 불과합니다. 즉, ‘개별적 유연화(personalisation)’―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말로 ‘개인별 맞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라는 지향을 담는 틀로서의 ‘자기주도 지원(self-directed support)’, 그리고 이러한 자기주도 지원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이를 구체화한 제도를 지칭하기도 하는 ‘개인예산제도’는 현금지급제도와 개념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구별되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일단 개인예산제도는 돌봄서비스를 넘어선 사회서비스 전 영역(+@)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어떤 장애인 K가 일정한 사정 절차를 걸쳐 여러 사회서비스에 대한 총량이 금액으로 환산되어 산출되면(즉 어떤 개인에 대해 예산액이 할당되면), 이러한 예산의 용도를 개인이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인예산제도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서비스 개시 이전에 자신에게 할당된 예산에 대해 ‘자기주도 조정’을 하는 것은 현금이나 바우처는 물론이고, 현물인 경우에도 시스템만 갖춰지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이지요.
잉글랜드의 경우에도 2013-14년에 자기주도 지원(개인예산제도)을 이용한 인구는 64만 7천 명인데,3) 직접지불제도를 이용한 인구는 15만 5천 명이었습니다. 즉 24% 정도만이 직접지불제도를 통해 개인예산제도를 이용하였으며, 나머지 대다수는 개인에게 할당된 예산을 지방정부나 서비스 제공기관 등 제 3자가 관리하는 관리예산제(managed personal budgets)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직접지불제도가 (성인) 신체장애인 운동 쪽에서 추동력이 나온 반면, 2003년부터 시작된 개인예산제도는 직접지불제도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발달장애인 운동 진영에서 추동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이 두 제도가 본질적으로 상이한 차원의 문제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핵심은 ‘서비스 간 자기주도 조정’보다는 ‘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에 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발달장애인법) 등에서 공식화된 용어를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주로 ‘개인별 지원’이라는 용어로 ‘개별적 유연화-자기주도 지원-개인예산제도’의 문제의식을 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개인예산제도는 검토해볼 만한 여지가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저는 장애등급제 폐지라는 한국적 맥락에서 이야기되었던 개인별 지원에는 개별적 유연화와는 조금 다른 문제의식과 강조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기주도 지원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개념을 차용해 이야기하자면 바로 ‘자기주도 사정(self-assessment)’[+동료 사정(peer assessment)]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의료적 기준에 의한 장애등급이나 여전히 재활적 기준에 얽매여 있는 일상생활활동/도구적 일상생활활동(ADL/IADL) 등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획일적 사정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와 환경을 반영하여 이루어지는 사정이 핵심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故 송국현 씨와 같은 장애인이 실제로는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데도, 장애등급 3급이라는 이유로, 또 인정점수가 낮게 나온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에서 배제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故 오지석 씨와 같이 실제로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데도 홀어머니와 함께 거주한다는(즉 독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생겨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법은 이미 개인예산제도의 부분적 적용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즉 현금 형태로 쉽게 환산이 가능한 바우처 방식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이용자가 서비스 간 조정 권한을 지닐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방식의 서비스 조정이 장애인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지에 대해, 적어도 한국적 상황에서 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만 18세 이상의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받는 사회서비스는 사실상 활동지원서비스 하나이며, 만 18세 이하의 아동일 경우에도 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아가족양육지원서비스 중 택1)와 발달재활서비스 2가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서비스가 좀 더 여러 가지라고 하더라도 강조점은 각각의 서비스를 자기주도적 사정을 통해 적절하고 충분하게 이용하는 데 주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후적 조정이 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서비스의 사정 과정에서 자기주도적 사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 ▲지난 6월 30일에 있었던 ‘장애인 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한가?’토론회에서 토론 중인 본지 김도현 발행인. |
우리에게 지금 요구되는 것: 필요한 서비스의 구축과 예산의 확대
현금지급제도 및 개인예산제도와 관련하여 장애인대중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오해 중 하나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주어진 돈을 마치 자신의 생활비나 용돈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오해입니다.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가 운영되는 곳은 없습니다. 현금지급제도는 애초 돌봄서비스 분야를 대상으로 도입된 것이었고, 개인예산제도의 경우 당연히 훨씬 폭넓은 조정이 가능하고 또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적용 범위는 사회서비스 분야입니다.
그리고 설령 사회서비스 분야의 개인예산을 그 범위를 넘어선 영역에까지 사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을 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는 소득보장, 사회서비스, 주거입니다. 그런데 소득이 부족하여 부족한 사회서비스 비용을 빼서 소득보장의 영역에 보태는 식의 임기응변적 사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유연성의 확대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선택권 보장은 아닙니다. 악순환이고 궁핍화일 뿐이지요.
사회서비스 영역의 경우, 이를 식단으로 비유하자면 현재 장애인의 밥상에는 밥과 김치 정도만, 그것도 매우 부족한 양만이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는 무얼 선택하고 조정하고 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밥과 김치와 국에 대한 비용이라도 넉넉하게 있어야, 계란프라이를 하나 더 얹을지, 아니면 참치 캔을 하나 더 얹을지 선택과 조정이 가능한 것이지요.
굳이 ‘국’을 하나의 어떤 사회서비스에 대응시켜보자면, 저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기결정지원인(self-determination supporter)’ 제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장애인계가 함께 노력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로 신체적 장애인의 필요에 맞추어져 있는) 활동지원제도와 같은 사회서비스만으로는 불충분한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자기결정지원인은 성년후견제도와 같은 ‘의사결정 대리(substituted decision-making)’에서 ‘의사결정 조력(supported decision-making)’으로의 변화에 부응하는 대인서비스라고 할 수 있으며,4) 당연히 지금의 활동보조인과는 완전히 다른 별도의 양성체계를 통해 충분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서비스의 성격상 소위 ‘단가’가 활동지원제도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이 되어야 할 될 것입니다. 당연히 상당한 금액의 예산이 새롭게 투입되어야 합니다.
즉, 제가 생각하는 개인별 지원(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을 중심에 놓든 개인예산제도(서비스 간 자기주도 조정)를 중심에 놓든, 장애인계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면서 소득보장 및 사회서비스 예산을 장애인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을 만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를 반드시 함께 고민하고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예산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적 현실에서 현금지급제도는 물론이고 개인예산제도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조차도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각주1) 존 글래스비․로즈마리 리틀차일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 15쪽.
각주2) 이동석․김용득, “영국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제도의 쟁점 및 한국의 도입 가능성”, 52쪽.
각주3) Health and Social Care Information Centre, Community Care Statistics: Social Services Activity, England(2013-14, Final release), p. 55.
각주4)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는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의 이행 상황에 대한 한국의 1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후 2014년 10월에 제시한 최종 견해(Concluding observations)에서 “2013년 7월에 시행된 새로운 성년후견제가 ‘질병, 장애 또는 고령에 의한 정신적 제한으로 인해 일을 처리하는데 영구적으로 무능한 상태라고 간주된 사람’의 재산과 개인적 사안에 관계된 결정을 후견인이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의사결정 대리’에서 당사자의 자율성과 의지, 그리고 선호를 존중하는 ‘의사결정 조력’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김도현 비마이너 발행인 beminor@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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