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피플퍼스트 위한 1회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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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짓지 마라', '다그치지 마라' 등 선언문 발표2014.10.24 18:47 입력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작성한 8개 문항의 대회 선언문을 낭독하는 모습. |
피플퍼스트(people first)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준비한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가 올해 처음 열렸다.
피플퍼스트는 지적·발달장애인 스스로 중심이 돼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이르는 말이다. 1960년대에 스웨덴에서 정신지체인 클럽을 중심으로 자기옹호운동이 시작하고, 1968년에 장애인 부모단체가 1회 자기권리주장대회를 여는 등 지적장애인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운동이 퍼지기 시작했다. 1973년 미국 오레곤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 장애인 참가자가 “지능이 낮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장애인으로서 아니라 나는 먼저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다!(I want to be treated like people first)”라고 말한 데서 '피플퍼스트'라는 명칭이 나왔다.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등으로 '피플퍼스트'라는 이름의 운동이 조직돼 나갔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각 지역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을 중심으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모아지기 시작했다. 발달장애 당사자 권익 옹호에 중점을 둔 자조 모임이 꾸려지고 이들이 일본의 발달장애당사자대회에 참가하는 등 한국의 피플퍼스트를 시작하기 위한 역량을 키워왔다.
그러다 지난 4월에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 등의 자조 모임을 중심으로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 준비위원회가 꾸려지면서 국내 피플퍼스트 조직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 준비위원회는 4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대구, 광주, 순천 등 준비위원기관 지역을 돌며 발달장애인대회의 세부 내용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24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제1회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가 열렸다.
발달장애당사자대회 박현철 준비위원장은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의 삶은 너무 형편없다. 생활시설에 사는 발달장애인은 물론, 집에 사는 발달장애인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라며 “이 대회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피플퍼스트라는 발달장애인이 뭉친 조직을 만들어 발달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일본 피플퍼스트의 사사키 노부유키 대표는 준비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1회 대회를 격려했다.그는 편지에서 “일본에서는 최근 생활시설 직원의 폭력으로 한 명의 장애인 동료가 사망했다. 학대 사건이 보이지 않지만, 끊이질 않는다.”라며 “우리는 힘을 합쳐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 한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의 성대한 개최를 기원한다.”라고 전했다.
이날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담은 대회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다 같은 사람이다, 다그치지 말아라, 쉽게 이야기해라처럼 간명하면서도 핵심적인 8개의 요구가 담겨있다.
<1회 전국발달장애당사자대회 선언문>
1.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서로 구분 짓지 말아라. 다 같은 사람이다.
2.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빨리빨리 하지 못한다고 다그치지 말아라.
3. 우리는 일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
4.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폭력을 쓰거나 무시하지 말아라.
5. 우리는 감정이 없는 동물이 아니다. 안 된다고 얘기하지 말라. 사랑도 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다.
6. 우리의 눈높이에서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라.
7. 우리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
8. 우리는 서로 서로 힘이 되어주고 도와가며 생활하자.
▲자립생활 경험을 발표하고 있는 정광석 씨. |
또한 이번 대회에서는 당사자들이 주제 발표, 3분 스피치 등을 통해 자신이 현재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12년 전 시설에서 나와 광주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정광석 씨는 체험홈에서 보내는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 씨는 “모든 게 서툴러 실수를 많이 했다. 설탕을 사온다고 흰 색깔만 보고 고구마 전분을 사오기도 하고, 상추를 배추로, 보리쌀을 찹쌀로 사 올 때도 있었다.”라며 “이렇게 많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내 스스로 청바지를 사고 세탁소에서 수선할 수도 있게 되었고, 후배가 자립생활 체험을 할 때 도와줄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정 씨는 “내가 지낼 수 있는 아파트가 있어서 좋고, 내 나름대로 하루하루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 수 있어서 좋다”라며 “나와 같은 지적장애인 후배들도 나처럼 자립생활에 도전해서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소망을 전했다.
어떤 당사자들은 자신이 발달장애인으로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대구에서 온 박재범 씨는 6년 전 대구의 한 공업대학에 지원했지만,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했다고 전했다.
박 씨는 “대학 사회복지과를 지원해서,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을 많이 도우면서 살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다”라며 “그 이유는 단지 먼저 입학한 친구들이 학교에서 말썽을 피운다는 이유였는데, 친구들은 나처럼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기분도 나쁘고 화가 났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 씨는 “앞으로 피플퍼스트 조직을 모아서 그 대학에 항의하러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부터 13년간 시설에 있었던 김종안 씨는 “시설에서 사는 것은 행복하지 않았다. 외출할 때는 생활재활교사, 팀장, 국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고, 통장에 돈이 있어도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라며 “나는 맞거나 하지 않았지만, 다른 장애인을 심하게 때려서 잘린 선생님도 봤다”라고 시설에서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지난 9월 29일부터 체험홈에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혼자 살면서 어려운 것도 많다. 밥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혼자 있을 때 아플까 봐 걱정도 된다.”라면서도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고 행복하다”라고 밝혔다.
김 씨는 “‘발달장애인은 안 된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발달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가족과 센터와 사회가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참가자들은 자신이 꿈꾸는 사랑, 연애, 결혼, 직업, 자립생활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화합을 다졌다.
한편 발달장애인대회 준비위원회는 이날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가칭 한국피플퍼스트 발기인 신청서를 받았으며, 차후 한국피플퍼스트 발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각 지역별 준비위원회 위원들이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갈홍식 기자 redspirits@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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